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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향

eoj 2020. 8. 21. 15:02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산 룸스프레이를 오래간만에 꺼내 뿌려보았다.

평소에는 뿌리지 않는 조금 달달하고 묵직한 서양의 향. 유럽의 여느 숙소에서 맡았던 향이 나면서 파리로 돌아간듯한 기분에 아찔해진다. 그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오페라 테마로 전시중이었고, 내가 산 룸스프레이 브랜드 컨셉이 오페라라서 내가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이 향수를 미술관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꼭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만이 신기하고 묘한 것이 아니라, 이 룸스프레이와 나와 닿은 인연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국적인 향인데다, 우연이 겹쳐 나와 인연이 닿은 물건이라는 사실이 더해주는 묘함이 좋다. 지나간 모든 것들에게서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혐오감이 들 때도 많다) 이 프랑스에서 사온 룸스프레이의 진하고 이국적인 향과, 그 향이 불러일으킨 추억들에 정신이 잠시 아득해진다. 날씨좋은 날 혼자 걸었던 마레지구 거리와 피카소 미술관의 기억 등등. 그런 날이 있다. 엄청난 횡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소한 완벽함이 모여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만들어 내는 날 말이다. 날씨와, 우연히 들어간 가게 점원의 친절, 새롭게 시도해본 음식의 예쁜 색감과 맛 등에 대한 은은한 만족감이 어우러져 완벽한 날을 만들어내는 경험. Pastuer역 근처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어설프게 담배를 피워보고 와인과 치즈를 사온 기억. (사서 마셨던 기억보다 거리의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두근두근거리며 와인을 고르고 샀던 것 자체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밤거리. 파리의 치안이 좋지 않아 항상 마음 한켠에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이 도사렸지만 무사히 지나온 지금은 스릴로 남아있다.) 거의 1년이 지난 한국에서의 여름날. 오늘 점심에는 아주 매서운 소나기가 들이쳤다가 오후 세시를 향해가는 지금은 말도 안되게 햇빛이 쨍하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커녕 커피 테이크아웃도 할까말까 고민하는 요즘이지만 먼훗날에 꼭 다시 찾고 싶은 날씨좋은 가을 혹은 봄의 파리가 기대되고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