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도서관은 내 마음의 안식처
종로도서관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 낮에 잠을 쿨쿨 자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를 다 허비해버렸을 때 종로도서관은 마지막 희망이다. 갑자기 친구를 만나러 가기에도 그렇고, 카페에 가서 카페인을 섭취하기엔 늦은 시간에도 종로도서관은 낮과 같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준다. 열려있는시간도 사시사철 어찌나 늦게까지 열려있는지 마더테레사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종로도서관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안식처이고 훌륭한 곳인 이유를 적어보겠다.
1. 훌륭한 책을 무료로 빌릴 수 있다. 나는 무라카미하루키 에세이와 단편소설집에 빠져서 닥치듯이 사서 읽어가던 때에 종로도서관과 재회했다. 그 때 종로도서관이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많은 하루키 책을 단기간이 읽어치우지 못했거나 지갑이 홀쭉해졌을 것이다.
2. 지하 1층 식당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일단 매일 매일 새로운 구성의 백반이 4천원이다. 나는 백반은 먹어본 적이 없고 치즈돈까스(3900원?) 치즈라면(2800원?)을 먹어보았다. 둘 다 맛있었고 가격도 10년전 가격을 보는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돈까스를 시켰을 때 옆에 나오는 밥의 양이다. 보통 돈까스 옆에 나오는 밥의 양은 새모이만큼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이건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아무리 밥이 적어도 스스로 돈까스를 시켰다면 받아들여야하는 불문율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밥을 돈까스 면적만큼 넓직하고 두툼하게 퍼준다. 나중에 더 달라고 할거면 애초에 잔뜩 퍼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일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두둑한 인정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잔반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먹고난 사람이 직접 잔반을 버리고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았기에 잔반 재활용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사실 급식실 특유의 분위기 (달그락 소리와 뜨거운 물에 급식판을 담가둔 냄새) 때문에 그 곳을 생각하면 식욕이 마구 돋아나지는 않아서 급할 때 아니면 식당에 잘 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듣든한 마음이 들게하는 식당이다.
3. 도서관의 정숙한 분위기와 질서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집에 있으면 공부나 독서를 잘 하지 못하며 망나니스러운 정도가 무한에 가까워진다. (물건을 깨부수는 망나니가 아니라 생산성있는 것을 하지 않고 널부러져있는 망나니를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통 어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카페에 많이 가곤 했는데 약간의 시끌시끌함과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서 들리는 소음의 정도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감각이 크게 자극받는 것에 민감해진 탓이다. 그런데 도서관에 있으면 다들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도 피해받지 않을 수 있는 이 공간이 좋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기 위해서 도서관 직원 분들의 노고가 필수적임을 안다. 특히 한 분은 존재만으로 도서관의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따로 이야기하고 싶다.
4. 도서관 사람들. 도서관의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이 가지는 특유의 정숙한 분위기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의 특징이 비슷할거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무표정이지만 불친절하지 않은, 최소한 화는 사그라들어있는 상태의 기운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분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셨다. 열람실에 앉아있으면 어떤 사람이 장기간 부재중인지 이름을 적고, 열람실마다 분위기가 어떤지 둘러보는 아저씨인데 원래 표정이 그런건지, 무서워보여야하는게 이 일에 최적이라 얼굴이 그렇게 변하신건지 모르겠지만 무섭게 생기셨다. 단테의 지옥 편에 나오는 여러가지 지옥들 중 한 군데에 저 분을 당장 던져서 바로 지옥의 문을 지키는 일을 시키더라도 전혀 위화이 들지 않을 것 같다. 표정과 존재만으로 도서관 이용자들이 스스로의 몸가짐을 되돌아보고 긴장하게끔 (절대 장시간 부재하지 말자는 다짐) 만든다는 것은 도서관 감시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이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왠지 도서관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직업적 소명으로 삼고 일에 임하는 아우라가 느껴져서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