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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Nobody 영화 미스터노바디를 보면서 느낀 점 아 이 이야기를 풀어낸 사람은 과거에 대한 짙은 후회와 사무치는 슬픔을 느껴본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조금만 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난해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감독처럼 다차원적으로 표현해내지는 못하지만 평소에 비슷한 생각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그 위로는 삶은 놀이터라는 니모의 명언스러운 대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발상을 담은 영화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니구나 하고 잠시나마 근원적인 외로움이 달래지는 기분이었다.
노래에 슬픔을 담아 날려보내면 이별을 몰랐던 어린 날의 내가 처음 겪은 이별은 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 같았다. 일부가 떨어져나간 공허함과 쓰라림을 이기지 못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목적지 없는 버스에 올라타서 무의미하게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고 눈물도 훔쳐가며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귀에 흘러나오던 노래에 담아 흘려보냈다. 그 노래는 날개를 가진 비둘기같아서 선율이 스며든 깃털들과 함께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멀리멀리 날아갔다. 시간이 흐른뒤 다시 만난 비둘기는 너무 슬퍼보이지만 더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를 날아다니다가 왔는지 모르겠는 비둘기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빛이 바랜 것 같다가도 깃털에는 그 때의 윤기나는 결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개와 싸우는 사람 살면서 개랑 싸우는 사람을 총 두 명 봤는데 그중 첫번째는 위층 살던 아저씨였다. 물론 술에 취하신 상태였긴 하지만 그 아저씨는 개와의 싸움에 대해 진심이었다. 온 힘을 쏟아 개를 향해 욕하고 소리쳤다. 술에 취했어도 그 아저씨가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 개는 멀리 담벼락 위에 있어서 절대 아저씨를 향해 아래로 뛰어내려올 일이 없지만, 개를 향해서 진심으로 소리치며 싸우는 건 다른 의미에서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 아저씨가 애니멀커뮤니케이터가 아닌 이상 개는 욕을 알아들을 수가 없을텐데 언어폭력으로 개와 맞선다는 점에서 충분히 진심이 엿보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개랑 싸운 두번째 사람은 공교롭게도 지금 위층에 살고 있는 교수님이다. 아까 이야기한 아저씨와 다른 인물이고 싸움의 대상..
닮은꼴찾기 나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할만한 재주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닮은꼴을 찾는 일이다. 요즘에는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되어 스마트렌즈로 닮은 꼴 찾아내는건 숨을 내뱉는 일보다 쉬운 일이 되었고, 그런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이런 재능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쓸모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전에나 지금에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 그 재능을 수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내가 가진 몇 가지 안 되는 모든 재능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여유가 생기면 읽고 보고 하고 싶은 것들 하루키 초반의 장편소설들 - 노르웨이의 숲, 양을 쫓는 모험, 상실의 시대, 댄스댄스댄스 등 (해변의 카프카는 정말 재미가 없었는데 다시 읽어보면 다를까? 워낙 어렸을 적에 읽었으니) 다시 보고 싶은 영화 - 번지점프를 하다. 유명한 배우들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는 것이 재밌다.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되돌릴 수 없는 그 때 그 모습에서 볼 수밖에 없는 풋풋한 외모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연기가 좋다. 비단 번지점프를 하다뿐만 아니라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정도의 옛날 영화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연기와 배우의 모습에서 느끼는 이질감. 나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애틋함에 매료된다. 여행 - 이전에 갔던 여행지에 다시 가고 싶다. 일본에 먼저. 프랑스는 아주..
시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향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산 룸스프레이를 오래간만에 꺼내 뿌려보았다. 평소에는 뿌리지 않는 조금 달달하고 묵직한 서양의 향. 유럽의 여느 숙소에서 맡았던 향이 나면서 파리로 돌아간듯한 기분에 아찔해진다. 그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오페라 테마로 전시중이었고, 내가 산 룸스프레이 브랜드 컨셉이 오페라라서 내가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이 향수를 미술관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꼭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만이 신기하고 묘한 것이 아니라, 이 룸스프레이와 나와 닿은 인연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국적인 향인데다, 우연이 겹쳐 나와 인연이 닿은 물건이라는 사실이 더해주는 묘함이 좋다. 지나간 모든 것들에게서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혐오감이 들 때도 ..
좋아하는 노래에 관하여 가끔씩 이렇게 밤에 센치해진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흥얼거리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감정이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어렸을 적부터 노래듣는 것을 참 좋아했다. 재수할 때도 나의 하얀색 조그만 애플 mp3에는 나만의 취향이 가득차있었지. 그때부터 가사 없는 곡을 많이도 들었다. 몬도 그로소의 1997 way home은 너무 좋아서 계속 계속 들으면서 이렇게 좋은 노래도 있구나 싶었었다. 이 노래를 함께 들었던 스무살 시절의 친구도 생각나고, 처음 만난 누군가의 mp3에 그 노래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헉 이건 운명인가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아니었음). 그런데 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게 닳는다. 지금은 몬도 그로소의 음악을 들어도 가슴이 쿵 내려앉지 않는다. 조금 아련할뿐...
밀어서 잠금해제 2012년 사진첩을 넘기다가 발견한 캡처사진. 밀어서 잠금해제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문다. 현재 아이폰X을 쓰고 있으니 저 슬라이드되는 부분은 현재는 아예 사라졌다.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밀어서 잠금해제. 저 슬라이드를 밀어서 잠금을 해제하면 내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그 때로 차원이동을 할 수 있을까? 괜히 캡쳐본에 손가락을 대어 미는 시늉을 해본다. 맨날 액정을 깨먹고 돈을 날리게 했던 내 옛날 핸드폰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자물쇠를 품고 영영 사라져버렸다.